원고 전 손풀기





이와쨩을 좋아한다. 아마 내 길지 않은 인생을 걸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몇 가지 구절 중 하나였다. 나는 어릴 적부터 이와쨩을 좋아했다. 이와쨩을 좋아한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와쨩을 좋아할 것이다……. 나는 갈수록 작아지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상황에 직면해있으니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이와쨩도 그것을 이해해주는 것인지 별다른 재촉을 하지 않았다.


오이카와. 넌 노력했어.”


나는 이와쨩을 좋아하고 이와쨩도 나를 좋아한다. 나는 그 문장만 같다면 무엇이든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좋아한다는 말의 의미가 목소리 높낮이 하나로도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생각하지 않았던 내 착오였다. 언제였지? 3년 전? 고교를 졸업하면서 이와쨩은 내게 좋아하노라 고백했다. 졸업을 축하하는 말이라기엔 영 이상한 말이었다. 무언가 이상한. “갑자기 뭐야, 징그럽게.” 라고 대꾸하기엔 나만 홀로 진지해지는 것이 아닌가했다. 그렇다고 알아. 나도 이와쨩 정말 좋아해.” 하고 대답하기에는 또 분위기가 미묘했다. 그러나 바보가 아니라면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둘 중 어느 답도 그때와 어울리지 않았다. 그건 지금까지의 모든 것에서 애매하게 어긋나있는 느낌이었다. 가장 완벽했던 관계에서 아주 약간의 삐끗함이 나타난 느낌. 자를 대고 멋지게 그어가던 직선이 아주 약간 삐뚤어진 기분. 그때 왜인지 나에게 고백했던 한 여자 아이가 떠올랐다. 그래. 이것은 그 좋아한다와 비슷한 형질이다. 그것보다 조금 더 어두운 그런. 그날 이와쨩은 곧 괜찮다고 말했다. 공격은 자신이 해놓고 괜찮다고 말하는 그의 의중을 알 수 없었다. 그랬기에 나는 오기처럼 알겠다고 대꾸했다. 이것이 아마 내 인생의 가장 큰 오만이었을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그때는 그 대답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핑계를 대보자면 그때의 이와쨩이 가졌던 눈빛이 험악했던 탓이라고. 내가 뒷걸음치면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져 순식간에 사라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기는 싫었다. 나에게 이와쨩은 완벽한 존재였다. 나의 완벽한 옆자리. 나의 완벽한 신뢰. 나의 완벽한 사람. 평생을 살면서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는 부분이었다. 또한 이와쨩 역시 나를 그렇게 생각해주리라 생각했다. 이 또한 의심이 없었다. 어릴 적 마치 이것이 가장 이상적인 관계의 시작이라는 듯 우리를 위해 내려왔던 시간들을 지나 실로 서로를 아꼈던 지난날들까지. 의심도 이상함도 없는 명작(名作)이었다. 그걸 위한 준비물이야 여러 상황이 있었지만 이후의 모든 것은 우리의 책임이었다. 우리가 만든 명작임이 확실했다.


그러니 그날 내가 말했던 나도 이와쨩을 좋아해.” 그건 내 인생 가장 커다란 진실이자 거짓이었다. 내가 얼빠진 대꾸를 했을 때 이와쨩의 표정은 어땠더라. 기뻐하거나 질색을 할 줄 알았는데. 혹은 흔치않게 우는 모습을 보이거나. 그러나 그날의 이와쨩은 제 고백만큼이나 미묘한 표정을 지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장담하는데 결단코 고백을 성공한 사람의 표정은 아니었다.


그래. 넌 처음부터 노력했지. 생각해보면 넌 쓸데없는 부분까지 전부 노력을 너무 많이 해. 그 버릇은 좀 고쳐야 한다고.”


그 뒤 하루 이틀 사흘. 이와쨩은 여전히 나의 완벽한 옆자리, 완벽한 신뢰, 완벽한 사람으로 곁에 있었다. 이와쨩이 달라진 건 없었다. 오히려 조바심이 났던 사람을 꼽으라면 내가 맞았다. 그래서 나는 와중에 생각했다. . 이것은 어쩌면 좋은 징조가 아닐까. 꼭 다른 데에는 눈치가 좋지만 사랑에는 눈치가 없는 순정 만화 남자 주인공처럼 뒤늦게 이것이 정말 사랑임을 깨닫게 되고 있는 과정이 아닐까. 하고. 때때로 내가 먼저 이와쨩에게 다가가 손을 잡았고 수시로 애정이 담긴 농담을 던졌다. 이와쨩이 황당한 표정을 지을 때마다 사귀는 사이엔 이러는 것이라며 홀로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당돌한 시간들이었다. 그랬기에 나는 정말로 내가 이와쨩을 점점 사랑하게 되고 있다 착각했다. 정말이지 눈물겨운 3년이었다.


그렇지만. 그건 노력이 중요한 게 아니야. 멍청카와.”


그 어느 남자 주인공도 사랑을 깨닫기 전 사랑을 할 것이라고 애를 쓰지 않는다. 사랑에 빠지기 위해 자신을 다독이는 주인공은 없다. 있다고 하더라도 보통 그것은 진짜 상대방을 찾기 전 시행착오로 끝나는 조연을 상대로겠지. 그 부분을 완벽히 망각했다. 이와쨩을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살짝 삐끗한 부분과 미묘해진 느낌을 다시 직선으로 곧게 그릴 수 있을 것이라고. 왜냐면 우리는 항상 그렇게만 걸어왔으니까. 어렵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정말 이와쨩을 좋아해. 이와쨩이 좋아. 내가 속삭였던 고백 중 그와 같은 일직선상에 놓였던 고백은 존재하기나 했을까. 나는 그 가당치도 않은 종류의 차이에 혀를 내눌렀다.


그건 좀 웃기잖아. 뭐야. 세뇌도 아니고. 내일은 너를 좋아할 거라고 계속해서 말하면 정말 좋아진다니.”


2년의 시간에 거쳐 이와쨩이 처음으로 내게 키스했을 때. 나는 이와쨩을 향해 웃지 못했다. ? 이것도 사귀면 하는 거야. 내가 버릇처럼 지껄이던 말을 이와쨩이 뱉었다. 처음이었다. 나는 노력하겠다는 말을 던졌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이와쨩을 사랑할 거야. 나는 정말 이와쨩을 좋아하니까. 아직 나는 깨닫지 못한 것뿐이고. 개뿔. 내가 깨닫지 못한 건 나의 어리석음뿐이었다. 피해자는 이와쨩이었지.


오이카와. 나는……. 네가 그날 거절했더라도 옆에 남았을 거다. 그냥 한 대 얻어맞고 끝낼 생각이었어. 아니면 네가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했을 때 내가 팼어야 했던 건데.”

……못된 말을 하네.”

그래. 오이카와. 나는 널 좋아해.”

알아.”

재수 없기는.”


졸업 날에도 비가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뭔가 왕창 오는 것도 아예 오지 않는 것도 아닌 애매한 빗방울이었다. 그걸 손으로 받아내면서 졸업식에 무슨 비야! 투덜거렸던 기억이 선명하다.


나는 널 보면 만지고 싶다. 그냥 그런 느낌의 좋아한다는 뜻이야.”

그것도 알아.”


나와 이와쨩이 지금 어느 멋들어진 카페에 앉아있다면 분위기가 달라졌을까? 조금은 실감났을까? 지금 내가 어떤 현실에 직면해 있는지? 그런데 하필이면 위치 선정도 날씨 선정도 최악이여서. 날씨는 또다시 졸업식 날처럼 비가 왕창 내리는 것도 아예 오지 않는 것도 아닌 애매한 빗줄기만 주륵주륵 내리고 있었고 우리가 서 있는 곳은 고작 동네 놀이터였다. 문득 집에 있는 네 짐들이 생각났다. 마지막 기억은 커다란 택배 박스들이었다.


나는 네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고 결혼을 하고 애를 낳아도 네 곁에 있을 거야.”

뭔가 웃긴다. 그래도 우리 아직 사귀는 사이거든?”

아마 내일도 네 옆에 있겠지.”


편의점에서 구매한 싸구려 우산 위로 빗방울이 자유낙하를 반복했다. 우산을 잡고 있는 손이 시렸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지 못하는가. 그 사실에 분했던 날이 있음을 숨기지 않겠다. 멍청한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남들은 하지 않는 고민임에 틀림없었다. 그래도 나는 근 3년을 매일같이 이와쨩을 좋아한다고 고백하면서도 한편에서는 원망을 계속했다. 왜 나는 이와쨩을 사랑하지 못하는가. 왜 이와쨩을 보면서 같은 생각을 할 수 없는가.


유난스럽게 굴 거 없는 일이야.”

……나만 이와쨩을 좋아한 말투야.”

별로. 조금 통쾌하긴 하다.”


3년의 시간, 나는 노력과 원망을 했으며 이와쨩은 사랑을 했다. 3년이 겨우 지났을 때 나는 여전히 노력과 원망을 했으며 이와쨩은 이별을 했다. 당최 어디서부터 무엇이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머금고 있던 것들이 너무 달랐다.


먼저 일어난 사람은 이와쨩이었다. 간다. 짐은 내일 전부 뺄게. 내일보자. 그의 말은 막힘이 없었다. 술술. 서론부터 본론, 그리고 결론까지 완벽했다. 나는 그 완벽한 등을 보며 생각했다. 3년간 이와쨩만이 사랑을 했고 이별을 했다. 나는 그냥 가만히 서서 그러겠노라 노력했을 뿐이다. 나는 오늘 아침까지 이와쨩을 사랑할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했으며 내일부터는 아마 이제 이와쨩을 사랑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할 것이다. 노력의 이유는 없어졌다. 우리는 다시 완벽한 일직선으로 돌아갈 것이고 변함없는 직선을 유지할 것이다. 완벽한 옆자리, 완벽한 신뢰, 완벽한 사람. 이와쨩의 말대로 내가 노력 없이 사랑에 빠지는 사람을 만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도 우리의 직선은 영원할 것이다. 이와쨩의 말만큼 막힘없이 뻗어나갈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나의 고민은 모두 없어졌다. 3년의 노력이 무색하게 허무한 실타래의 끝이었다.


그렇다면 이와쨩의 사랑과 이별과 미래는? 말하기도 괜스레 벅찬 세 가지 단어를 지나 이상하게 우산의 끝이 내려왔다. 등이 축축하게 젖는 기분이 들었다. 바지 끝이 흉하게 빗방울에 물들었다.


……?”


3년간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한 것은 오로지 이와쨩 뿐이다. 나는 매번 노력과 원망만을 했다. 그런데 왜. 이와쨩의 뒷모습은 그리도 담담했고 나는 지금 울고 있는가. 나는 볼과 턱을 거치지도 못하고 숙인 고개에 그대로 바닥으로 직행하는 눈물들을 보며 이상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 어째서 눈물은 내가 흘리고 있는가. 왜 덤덤하지 못한 것은 나 홀로 뿐인가.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한 것은 이와쨩인데 도대체 왜?


3년의 시간을 이와쨩을 사랑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이와쨩이 말했듯 세뇌라도 시키려는 사람처럼 스스로에게 꾸준히 되뇌었다. 이제 내일부터는 이와쨩을 사랑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할 것이다. 이와쨩을 사랑하지 않아도……. 그때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랑을 하려고 애를 쓰는 것처럼 사랑하지 않으려 애를 쓰는 것도 의미가 없다. 3년의 시간 동안 내가 정말 이와쨩을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내일의 내가 이제 사랑하지 않아도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일 리가 없다.


나는 내가 꼭 다른 데에는 눈치가 좋지만 사랑에는 눈치가 없는 순정 만화 남자 주인공처럼 뒤늦게 깨달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잊고 있었던 것이 있다. 뒤늦은 깨달음은 이별로부터 온다. 사랑의 뒤늦은 깨달음은 이별로부터 온다. 이 얼마나 지겹고 진부한 공식인가.


…….”


싸구려 우산 위로 비는 계속해서 떨어졌다. 내 뒷모습이 전부 젖었다. 전부 젖고 나서야 젖었음을 알았다. 뒤늦게 알싸하게 피부 위로 퍼지는 축축함을 느끼며 그제야. 정말 그제야…….


웅덩이가 발목을 붙잡는 듯 했다. 이제는 너의 차례라고 말하듯이.






원래 라키님이 빛나는 분들의 투명 우산이라는 노래의 이오를 보고 싶다해서 적었는데 어느새 그 노래에서 벗어난 것만 같네요. 노래 좋으니까 다들 꼭 들어보시기를! 뭔가 적고 싶은 이야기 많았는데 시간상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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