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프렉.

오이카와의 존재를 모르는 아들의 시점입니다.




옛날부터 아버지는 어딘가 물어볼 수조차 없는 깊이의 빈 조각이 있는 사람이었다. 항상 호쾌하나 어딘가 결여되어 있는 사람 같을 때가 있었다. 예를 들어 혼자 아파트 발코니에서 멍하니 하늘을 본다거나 습관처럼 누군가의 이름을 말하려다 멈추는 그런 때들. 혹은 내 사소한 행동에도 깜짝 놀란 사람의 눈으로 나를 바라볼 때라거나. 분명 아버지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쫓고 계셨다. 아버지께선 늘 그 모습들을 숨기고 싶어 하셨지마는.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아버지의 집은 나를 제외하면 아무도 없는 공간이었다. 아버지는 매우 좋은 사람임이 틀림없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그 옆자리는 항상 텅텅 비어있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내 부모의 한 자리 역시 언제나 비어있었다. 어릴 때의 나는 그것이 늘 궁금했다. 친구들 대부분이 당연하다는 듯 함께하고 있던 어머니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나의 어머니는 누구인가. 그랬기에 어릴 때의 나는 늘 아버지께 질문하기 바빴다. 미완성된 발음으로 아빠. 엄마는?” 나보다 한참 위에 있던 얼굴을 올려다보며 묻곤 했다. 그러면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몹시 난감한 얼굴로 대답할 말을 한참이나 고민하는 것이다.


그는 거짓말을 못 했다. 그래서 내게 단 한 번도. 그 수많던 질문 중 단 한 번도 어머니의 존재에 대해 입을 연 적이 없었다. 나이가 한 자릿수를 맴돌 때야 그것이 야속했지, 12살을 넘길 즈음부턴 직감할 수 있었다. 아버지의 방 가장 구석에 처박혀 있던 자그마한 액자 속 사진을 발견한 뒤로 나는 어머니에 대한 존재를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나에게 있어 어머니라는 존재는 없을 것이라고 그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때 내가 보았던 아버지의 추억 더미에 꼭 그 액자만 있었던 것도 아니었으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랬기에 더욱 확실하다고 여겼다. 지금에 와서도 느끼지만 어릴 적 가지는 가장 순수하고 정확한 촉이란 무서운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가 아버지와 둘이서만 함께하는 삶이라거나 아버지의 침묵에 불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버지는 남들이 가진 생각보다 훨씬 다정하고 멋진 사람이었으며 나와 함께 하는 시간이 적지도 않았다. 몇몇 간섭 많은 어른의 우려와 다르게 나는 지난 시간동안 외로움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아버지가 나를 그렇게 두지 않았다.


또한 아버지께는 죄송하지만 나는 아버지의 이별과 침묵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 나의 이른 추측으로 덧붙이건대 세상이 많이 누그러졌다지만 아직 남자와 남자에 대한 편견은 남아 있기 마련이었다. 남자가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모든 시선이 좋아질 수는 없는 것이었다. 아마 나의 또 다른 태초 적 존재도 마찬가지의 이유로 이곳을 떠났을 것이라 여긴다. 그러니 섣불리 원망을 던질 수 없었다. 게다가 나를 낳았을 때 아버지의 나이가 22살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더더욱 그랬다. 내가 불행하지 않은 것처럼 아버지가, 혹은 또 다른 내 추측의 존재가 나라는 생명으로 인해 불행하지 않기를 바랐다. 간혹 호기심이 내 발 밑을 굴러가기도 했으나 못 견딜 정도도 아니었다. 굳이 없는 원망의 이유를 붙이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기엔 현재가 굉장히 만족스러운 것이 까닭이었다.


나는 여전히 아버지와 살고 있으며 내가 나이에 비해 제법 성숙한 생각을 하게 될 즈음 벌써 그 수가 14번을 반복했다. 작년, 아버지는 내가 중학교에 입학할 당시 꽤 감격스러운 얼굴로 나를 끌어안았다. 생각보다 격한 포옹에 당황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퍽 나쁘지 않은 행위였다. 이처럼 아버지는 감정 표현에 서툰 사람이지만 결코 다정하지 못한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종종 저돌적인 직구, 행동을 날리며 나를 당황하게 하기도 했다. 그때의 포옹처럼.


아버지의 직업은 평범한 회사원이다. 대개 7시 즈음 집에 도착을 하고 저녁을 드신다. 그렇기에 아침은 아버지의 몫이고 저녁은 나의 몫이었다. 아버지는 저녁을 먹으며 반드시 내게 오늘은 어땠느냐 물었고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내게 같이 목욕 할 것을 제안했다. 주말이 되면 같이 하루 종일 집안을 뒹굴뒹굴하다 배달 음식을 시켜먹고 때때로 늘어진 티셔츠를 입은 채 장을 보러가기도 한다. 아버지는 맥주를 좋아하시고 나는 탄산을 좋아했기에 냉장고엔 음료가 언제나 그득했다. 남자 둘이 산다는 것을 티내는 듯 곳곳에 다소 아무렇게나 걸린 무채색 양말들이 항상 보였고 아버지와 모으기 시작한 건담들이 그다지 크지도 작지도 않은 진열장 안에 얌전히 자리 잡고 있었다. 이렇듯 나와 아버지의 삶과 집은 지극히 평범했으며 이곳에 굳이 누군가가 더 추가될 필요를 느낄 수 없을 만큼 괜찮은 가정이었다. 그래. 때때로 아버지가 가지는 찰나의 멈춤이 없다면 나는 끝까지 이 생활에서 부족함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


단언컨대 나의 아버지는 내게 있어 가장 의외성이 짙은 인물이다. 비록 나의 아버지이지만 그는 비밀이 많다. 정확하게 나를 낳은 인물에 대한 비밀이 많다. 내게 결코 허투루 말씀하시는 법이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종종 아버지가 그 사람을 많이 그리워하고 있음을 느낄 때가 있다. 그것은 나라는 사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오로지 그 사람의 자리임을 알게 된 것은 오래 되지 않았다. 아버지는 딱 한 번 술에 취한 채 그 사람이 가진 공간에 대해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당시 아버지의 말씀은 아마 나는 평생 너한테 엄마라는 존재를 만들어 줄 수 없을 것 같아.” -였다. 필시 아버지께서는 내가 잠에 빠진 줄 알고 계셨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그날 얼마나 많은 사과를 하셨는지. 나는 그것을 전부 듣고 있었다. 비록 사과의 횟수가 10번이 넘어갈 때부터 숫자를 세는 걸 포기했지마는. 그래도 그날은 나름대로 충격이었다. 그럴 것이라고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것과 확인사살을 당하는 것은 확실히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깨달았다. 나는 그날 어느 정도 자부하고 있던 나의 성숙이 완벽하지 못함을 또다시 알게 되었다. 본 적도 없는 그 사람의 거대함이 나를 툭툭 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나의 희망이라는 이름과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미래라는 이름으로, 후에 아버지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아마 한 쪽엔 여전히 그 사람의 자리를 두겠지. 새로운 사람이 찾아오는 것과 별개로 그냥 그렇게 둘 것이 뻔했다. 언젠가 그 사람보다 더욱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사람이 생기더라도 말이다. 나의 자리를 그 사람이 채울 수 없고 그 사람의 자리를 내가 채울 수 없는 것처럼. 그건 결코 같아질 수 없는 감정의 주인들이기에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고작 며칠의 방황 이후 아버지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고 그 분한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차라리 아버지답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다음날 그 일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셨지만(기억하신다고 해도 내가 잠에 든 줄 아실 것이다.) 나는 그때를 잊을 수 없다. 아버지의 처음 보는 표정, 처음 듣는 이 환경에 대한 사과, 채울 수 없는 자리의 공허함에 대한 고백. . 여러모로 강렬했던 날이었다. 그날이 싫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뒤로 지금껏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아버지의 멈춤이 더욱 잘 보이게 되었을 뿐이었다. 잘 굴러가던 세상에서 갑작스레 홀로 우뚝 자전을 멈춘 것 같은 아버지의 공허함을 더 예리하게 포착할 수 있게 된 것뿐이었다.


오늘은 저녁에 외식이라도 할까? 아버지께서 물었다. 나는 무심코 달력을 바라보았다. 25일이었다. 월급날이라서요? 내 되물음에 그가 웃었다.


맞아. 싫어?”

그럴 리가. 저 오늘 고기 먹고 싶어요.”

그래 그럼. 이따가 전화하면 내려와.”

알겠어요.”


갔다 온다. 아버지께서 신발을 구겨 신으며 손을 흔들었다. 나는 장난스러움을 그득 묻히고 입을 열었다.


아버지.”

?”

뽀뽀라도 해드릴까요.”

징그러 임마. 진짜 간다.”


사실 아버지께서 이러한 말에 면역이 없다는 걸 최근에 알았다. 원채 간지러운 말이나 행동을 선호하지 않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몇 가지 행동에는 유독 더 그랬다. 그것이 그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어렵지는 않았다. 사실 그것을 알기에 던지는 장난이었다. 만약 아버지께서 안다면 알고서 놀리는 것이냐며 머리통을 잡아올 일이었지만 아직 모르고 계신 것 같으니 며칠은 더 유효할 장난이었다. 그나저나 어지간히 농담에 뻔뻔한 사람이었나 보군. 나는 스스로 말하고도 오소소 일어난 닭살을 비비며 고개를 저었다.


한때 내 소원 중 하나는 나의 아버지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은 지금도 진행 중이나 의미가 많이 바뀌었다. 그랬기에 아버지의 앞에서 많은 장난을 쳐대도 새로운 사람에 대한 언급만은 하지 않았고 아버지도 구태여 말씀하시지 않았다. 서로가 강요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또 그렇게 평범한 우리 부자(父子)의 배려고 나날이다.



 

오늘따라 지루하던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나는 문득 봄이 왔음을 알았다. 아직 겨울의 미련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 불어오는 바람은 제법 싸늘했으나 길가에 피기 시작한 꽃봉오리들이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나는 골목까지 함께 걸어오던 친구와 손을 흔들며 멀어졌다. 마침 아버지께 전화가 걸려왔다. “벌써 끝나셨어요? 저 이제 집 다 와 가요.” 내 말에 아버지는 앞에서 기다리겠다고 말씀하신 뒤 전화를 끊었다. 아마 또 보이지도 않는데 대답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셨을 것이 눈에 선했다. 괜히 웃음이 흘렀다. 나는 발에 차이는 돌멩이들에게 심심한 사과를 전하며 짧은 콧노래를 불렀다. 혈기왕성한 뱃속은 시간 맞추어 배고픔을 알리기 바빴다. 얼른 가자. 나는 누구에게 던지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마지막 코너를 돌았다. 코너를 돌자마자 나를 기다리고 계시는 아버지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나는 곧바로 발걸음을 멈췄다. ……멈췄다? 걸음을 빨리해도 모자를 판에 나는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살짝 떨어진 거리에서 보이는 아버지는 혼자가 아니었다. 나에겐 뒤통수만 보이는 키 큰 남자가 한 명 더 있었다. 남자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건 오직 아버지의 얼굴이었다.


아버지는 감정 표현에 서툰 사람이지만 결코 다정하지 못한 사람은 아니다. 종종 저돌적인 직구를 날리며 나를 당황하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와 함께 해오던 14년 중 단 한 번도 아버지의 그런 얼굴을 본 적이 없다. 그것은 나에게 지을 수 없는 표정이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한 번도 비어있는 옆자리에 대해 언급하셨던 적이 없다. 그 자리가 누구의 것인지, 나이는 어떤지, 어떻게 생긴 사람이었는지, 어떠한 사람인지, 심지어 여자인지 남자인지조차도. 그래도 나는 그날 아버지를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방구석에 처박혀있던 자그마한 액자 속 사진을 보았던 언제가의 날처럼.

 

, 저 사람이구나.

 

왜 우리를 떠났어요?


한 번쯤 순수하게 궁금해서라도 중얼거려본 질문은 막상 현재에 와서 코빼기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질문이 중요한 때가 아니었다.

나는 그날 평생 만나지 못하리라 단념했던 아버지의 봄을 보았다. 아버지의 가장 이르고 늦던, 가장 춥고 따뜻했을. 그 봄의 귀환을…….

 





 

여행을 앓는 사람이

사라진 계절 저 편에서 걸어오고 있다.


─ 윤성택, 여독





이와오이 온리전에서 발간했던 회지의 본편 전문이며 실제 회지 20p 중 9p 정도의 분량입니다. 본편 외 외전들은 회지에서만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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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오이] 직선 관계  (0) 2016.12.12

원고 전 손풀기





이와쨩을 좋아한다. 아마 내 길지 않은 인생을 걸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몇 가지 구절 중 하나였다. 나는 어릴 적부터 이와쨩을 좋아했다. 이와쨩을 좋아한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와쨩을 좋아할 것이다……. 나는 갈수록 작아지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상황에 직면해있으니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이와쨩도 그것을 이해해주는 것인지 별다른 재촉을 하지 않았다.


오이카와. 넌 노력했어.”


나는 이와쨩을 좋아하고 이와쨩도 나를 좋아한다. 나는 그 문장만 같다면 무엇이든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좋아한다는 말의 의미가 목소리 높낮이 하나로도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생각하지 않았던 내 착오였다. 언제였지? 3년 전? 고교를 졸업하면서 이와쨩은 내게 좋아하노라 고백했다. 졸업을 축하하는 말이라기엔 영 이상한 말이었다. 무언가 이상한. “갑자기 뭐야, 징그럽게.” 라고 대꾸하기엔 나만 홀로 진지해지는 것이 아닌가했다. 그렇다고 알아. 나도 이와쨩 정말 좋아해.” 하고 대답하기에는 또 분위기가 미묘했다. 그러나 바보가 아니라면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둘 중 어느 답도 그때와 어울리지 않았다. 그건 지금까지의 모든 것에서 애매하게 어긋나있는 느낌이었다. 가장 완벽했던 관계에서 아주 약간의 삐끗함이 나타난 느낌. 자를 대고 멋지게 그어가던 직선이 아주 약간 삐뚤어진 기분. 그때 왜인지 나에게 고백했던 한 여자 아이가 떠올랐다. 그래. 이것은 그 좋아한다와 비슷한 형질이다. 그것보다 조금 더 어두운 그런. 그날 이와쨩은 곧 괜찮다고 말했다. 공격은 자신이 해놓고 괜찮다고 말하는 그의 의중을 알 수 없었다. 그랬기에 나는 오기처럼 알겠다고 대꾸했다. 이것이 아마 내 인생의 가장 큰 오만이었을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그때는 그 대답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핑계를 대보자면 그때의 이와쨩이 가졌던 눈빛이 험악했던 탓이라고. 내가 뒷걸음치면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져 순식간에 사라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기는 싫었다. 나에게 이와쨩은 완벽한 존재였다. 나의 완벽한 옆자리. 나의 완벽한 신뢰. 나의 완벽한 사람. 평생을 살면서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는 부분이었다. 또한 이와쨩 역시 나를 그렇게 생각해주리라 생각했다. 이 또한 의심이 없었다. 어릴 적 마치 이것이 가장 이상적인 관계의 시작이라는 듯 우리를 위해 내려왔던 시간들을 지나 실로 서로를 아꼈던 지난날들까지. 의심도 이상함도 없는 명작(名作)이었다. 그걸 위한 준비물이야 여러 상황이 있었지만 이후의 모든 것은 우리의 책임이었다. 우리가 만든 명작임이 확실했다.


그러니 그날 내가 말했던 나도 이와쨩을 좋아해.” 그건 내 인생 가장 커다란 진실이자 거짓이었다. 내가 얼빠진 대꾸를 했을 때 이와쨩의 표정은 어땠더라. 기뻐하거나 질색을 할 줄 알았는데. 혹은 흔치않게 우는 모습을 보이거나. 그러나 그날의 이와쨩은 제 고백만큼이나 미묘한 표정을 지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장담하는데 결단코 고백을 성공한 사람의 표정은 아니었다.


그래. 넌 처음부터 노력했지. 생각해보면 넌 쓸데없는 부분까지 전부 노력을 너무 많이 해. 그 버릇은 좀 고쳐야 한다고.”


그 뒤 하루 이틀 사흘. 이와쨩은 여전히 나의 완벽한 옆자리, 완벽한 신뢰, 완벽한 사람으로 곁에 있었다. 이와쨩이 달라진 건 없었다. 오히려 조바심이 났던 사람을 꼽으라면 내가 맞았다. 그래서 나는 와중에 생각했다. . 이것은 어쩌면 좋은 징조가 아닐까. 꼭 다른 데에는 눈치가 좋지만 사랑에는 눈치가 없는 순정 만화 남자 주인공처럼 뒤늦게 이것이 정말 사랑임을 깨닫게 되고 있는 과정이 아닐까. 하고. 때때로 내가 먼저 이와쨩에게 다가가 손을 잡았고 수시로 애정이 담긴 농담을 던졌다. 이와쨩이 황당한 표정을 지을 때마다 사귀는 사이엔 이러는 것이라며 홀로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당돌한 시간들이었다. 그랬기에 나는 정말로 내가 이와쨩을 점점 사랑하게 되고 있다 착각했다. 정말이지 눈물겨운 3년이었다.


그렇지만. 그건 노력이 중요한 게 아니야. 멍청카와.”


그 어느 남자 주인공도 사랑을 깨닫기 전 사랑을 할 것이라고 애를 쓰지 않는다. 사랑에 빠지기 위해 자신을 다독이는 주인공은 없다. 있다고 하더라도 보통 그것은 진짜 상대방을 찾기 전 시행착오로 끝나는 조연을 상대로겠지. 그 부분을 완벽히 망각했다. 이와쨩을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살짝 삐끗한 부분과 미묘해진 느낌을 다시 직선으로 곧게 그릴 수 있을 것이라고. 왜냐면 우리는 항상 그렇게만 걸어왔으니까. 어렵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정말 이와쨩을 좋아해. 이와쨩이 좋아. 내가 속삭였던 고백 중 그와 같은 일직선상에 놓였던 고백은 존재하기나 했을까. 나는 그 가당치도 않은 종류의 차이에 혀를 내눌렀다.


그건 좀 웃기잖아. 뭐야. 세뇌도 아니고. 내일은 너를 좋아할 거라고 계속해서 말하면 정말 좋아진다니.”


2년의 시간에 거쳐 이와쨩이 처음으로 내게 키스했을 때. 나는 이와쨩을 향해 웃지 못했다. ? 이것도 사귀면 하는 거야. 내가 버릇처럼 지껄이던 말을 이와쨩이 뱉었다. 처음이었다. 나는 노력하겠다는 말을 던졌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이와쨩을 사랑할 거야. 나는 정말 이와쨩을 좋아하니까. 아직 나는 깨닫지 못한 것뿐이고. 개뿔. 내가 깨닫지 못한 건 나의 어리석음뿐이었다. 피해자는 이와쨩이었지.


오이카와. 나는……. 네가 그날 거절했더라도 옆에 남았을 거다. 그냥 한 대 얻어맞고 끝낼 생각이었어. 아니면 네가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했을 때 내가 팼어야 했던 건데.”

……못된 말을 하네.”

그래. 오이카와. 나는 널 좋아해.”

알아.”

재수 없기는.”


졸업 날에도 비가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뭔가 왕창 오는 것도 아예 오지 않는 것도 아닌 애매한 빗방울이었다. 그걸 손으로 받아내면서 졸업식에 무슨 비야! 투덜거렸던 기억이 선명하다.


나는 널 보면 만지고 싶다. 그냥 그런 느낌의 좋아한다는 뜻이야.”

그것도 알아.”


나와 이와쨩이 지금 어느 멋들어진 카페에 앉아있다면 분위기가 달라졌을까? 조금은 실감났을까? 지금 내가 어떤 현실에 직면해 있는지? 그런데 하필이면 위치 선정도 날씨 선정도 최악이여서. 날씨는 또다시 졸업식 날처럼 비가 왕창 내리는 것도 아예 오지 않는 것도 아닌 애매한 빗줄기만 주륵주륵 내리고 있었고 우리가 서 있는 곳은 고작 동네 놀이터였다. 문득 집에 있는 네 짐들이 생각났다. 마지막 기억은 커다란 택배 박스들이었다.


나는 네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고 결혼을 하고 애를 낳아도 네 곁에 있을 거야.”

뭔가 웃긴다. 그래도 우리 아직 사귀는 사이거든?”

아마 내일도 네 옆에 있겠지.”


편의점에서 구매한 싸구려 우산 위로 빗방울이 자유낙하를 반복했다. 우산을 잡고 있는 손이 시렸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지 못하는가. 그 사실에 분했던 날이 있음을 숨기지 않겠다. 멍청한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남들은 하지 않는 고민임에 틀림없었다. 그래도 나는 근 3년을 매일같이 이와쨩을 좋아한다고 고백하면서도 한편에서는 원망을 계속했다. 왜 나는 이와쨩을 사랑하지 못하는가. 왜 이와쨩을 보면서 같은 생각을 할 수 없는가.


유난스럽게 굴 거 없는 일이야.”

……나만 이와쨩을 좋아한 말투야.”

별로. 조금 통쾌하긴 하다.”


3년의 시간, 나는 노력과 원망을 했으며 이와쨩은 사랑을 했다. 3년이 겨우 지났을 때 나는 여전히 노력과 원망을 했으며 이와쨩은 이별을 했다. 당최 어디서부터 무엇이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머금고 있던 것들이 너무 달랐다.


먼저 일어난 사람은 이와쨩이었다. 간다. 짐은 내일 전부 뺄게. 내일보자. 그의 말은 막힘이 없었다. 술술. 서론부터 본론, 그리고 결론까지 완벽했다. 나는 그 완벽한 등을 보며 생각했다. 3년간 이와쨩만이 사랑을 했고 이별을 했다. 나는 그냥 가만히 서서 그러겠노라 노력했을 뿐이다. 나는 오늘 아침까지 이와쨩을 사랑할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했으며 내일부터는 아마 이제 이와쨩을 사랑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할 것이다. 노력의 이유는 없어졌다. 우리는 다시 완벽한 일직선으로 돌아갈 것이고 변함없는 직선을 유지할 것이다. 완벽한 옆자리, 완벽한 신뢰, 완벽한 사람. 이와쨩의 말대로 내가 노력 없이 사랑에 빠지는 사람을 만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도 우리의 직선은 영원할 것이다. 이와쨩의 말만큼 막힘없이 뻗어나갈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나의 고민은 모두 없어졌다. 3년의 노력이 무색하게 허무한 실타래의 끝이었다.


그렇다면 이와쨩의 사랑과 이별과 미래는? 말하기도 괜스레 벅찬 세 가지 단어를 지나 이상하게 우산의 끝이 내려왔다. 등이 축축하게 젖는 기분이 들었다. 바지 끝이 흉하게 빗방울에 물들었다.


……?”


3년간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한 것은 오로지 이와쨩 뿐이다. 나는 매번 노력과 원망만을 했다. 그런데 왜. 이와쨩의 뒷모습은 그리도 담담했고 나는 지금 울고 있는가. 나는 볼과 턱을 거치지도 못하고 숙인 고개에 그대로 바닥으로 직행하는 눈물들을 보며 이상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 어째서 눈물은 내가 흘리고 있는가. 왜 덤덤하지 못한 것은 나 홀로 뿐인가.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한 것은 이와쨩인데 도대체 왜?


3년의 시간을 이와쨩을 사랑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이와쨩이 말했듯 세뇌라도 시키려는 사람처럼 스스로에게 꾸준히 되뇌었다. 이제 내일부터는 이와쨩을 사랑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할 것이다. 이와쨩을 사랑하지 않아도……. 그때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랑을 하려고 애를 쓰는 것처럼 사랑하지 않으려 애를 쓰는 것도 의미가 없다. 3년의 시간 동안 내가 정말 이와쨩을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내일의 내가 이제 사랑하지 않아도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일 리가 없다.


나는 내가 꼭 다른 데에는 눈치가 좋지만 사랑에는 눈치가 없는 순정 만화 남자 주인공처럼 뒤늦게 깨달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잊고 있었던 것이 있다. 뒤늦은 깨달음은 이별로부터 온다. 사랑의 뒤늦은 깨달음은 이별로부터 온다. 이 얼마나 지겹고 진부한 공식인가.


…….”


싸구려 우산 위로 비는 계속해서 떨어졌다. 내 뒷모습이 전부 젖었다. 전부 젖고 나서야 젖었음을 알았다. 뒤늦게 알싸하게 피부 위로 퍼지는 축축함을 느끼며 그제야. 정말 그제야…….


웅덩이가 발목을 붙잡는 듯 했다. 이제는 너의 차례라고 말하듯이.






원래 라키님이 빛나는 분들의 투명 우산이라는 노래의 이오를 보고 싶다해서 적었는데 어느새 그 노래에서 벗어난 것만 같네요. 노래 좋으니까 다들 꼭 들어보시기를! 뭔가 적고 싶은 이야기 많았는데 시간상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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