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HQ /  전생파트



비록 앞선 소개로 오이카와가 돌연변이 속의 돌연변이라고는 하나 그것이 그의 고유한 속성을 부정하는 말이 될 수는 없다. 그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어찌 되었든 평범한 자들에겐 그의 종족 자체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사람들은 오이카와가 자신들을 건들지 않는다.’ 라는 사실보다는 언제 돌변할지 모른다.’ 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렇다고 그러한 점들을 탓할 수도 없는 것이 오이카와처럼 선량하다 돌아선 작자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다수가 그렇다면 그와 비슷한 소수까지 의심을 받는 건 당연했다. 그러나 그는 이와 같은 의심이 억울하면서도 스스로가 그런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별다른 불평을 하지는 않았다. 변명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건 어쩐지 자신을 더욱 초라하게 만들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오이카와는 종종 이것이 정말 사람들 틈에 녹아들어 생활하고 있는 것일까 의문을 가질 때가 있었다. 자신의 선대들은 자랑스럽게 평범한 이들의 생활 속에 녹아들었다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녹아들었다는 표현보다는 억지로 파고들어 자리를 쳤다는 게 맞는 문장인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무렴. 결론적으로 오이카와가 어떤 행동을 하든 오이카와를 바라보는 시선들의 근본적 경계는 변하지 않았다. 당장 오이카와가 위급한 환자들을 순식간에 치료해주지만 그 감사함도 잠시였다. 목숨을 위협하던 상처가 씻은 듯 사라지고 나면 그들은 하나 같이 감탄과 두려움을 한데 뒤섞은 표정을 한 채 줄행랑을 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오이카와는 인간에 가까운 존재였으나 결코 완전한 인간은 될 수 없었으니 그 사실을 조금이라도 티 낼 때마다 경악스러운 시선을 마주하게 되는 것은 막을 도리가 없었다. 오이카와가 할 이유 없는 해명을 할 인물도 아니었으니 자연스럽게 그것의 반복이었다.


어차피 어떤 행동을 하던 자신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오이카와는 아주 오래전 그 사실을 통감했고 그 후로 더 이상 그 부분에 대해 노력 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자신의 예상을 벗어나는 인물은 없었다. 대부분 자신에게 보여 오던 선택지들을 그대로 따라갔고 틀을 벗어나는 반응을 보인 적이 없었다. 그랬기에 오이카와에게 있어서 혐오의 감정은 우스운 것이었다. 자신을 얼마나 혐오하든 대놓고 표출하던 사람은 없었으니까. 애당초 혐오를 떠나서 자신에게 사사로운 감정을 표출하는 사람이 없었다. 분명.


뭘 봐.’


그러니 단언컨대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가 처음 만나보는 부류의 사람이라는 소리였다. 생전 처음 보는 종족(種族)도 아니고 처음 보는 부류(部類)의 사람 말이다. 정해진 틀의 가장자리를 깨부수고 멋대로 뻗친 듯 거슬리는. 오이카와는 기가 차다는 표정을 한 채 고개를 돌렸다. 그는 첫인상이라거나 들려오는 소문과는 여러모로 다른 사람이었다. 경계가 잔뜩 서려 있던 그날은 단순히 피곤함에 의한 경고였을 뿐이었던 건지 평소 이와이즈미의 눈은 김이 빠질 정도로 평범했다. 굳이 오이카와 자신이 먼저 찾지 않는다면 저를 찾아오는 일도 적었으며 간혹 마주칠 때에도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는 오이카와에게 두려움을 가지지도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다. 기실 오이카와에게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이와이즈미는 한 나라의 통치자로서 정치를 잘 하고 평판이 좋은 인물임이 틀림없었으나 누구에게도 일정한 양 이상의 관심을 가지는 법이 없었다. 적당한 관심과 적당한 자비, 적당한 단호함이 고루 섞여 있는 사람이었다.


그 후로 7개월이 지났다. 반년을 겨우 넘긴 시간이었지만 이와이즈미와 오이카와는 열여덟에서 열아홉이 되었다. 2번의 계절이 지나가고 3번째 계절이 다가오는 길이의 시간이었다. 또한 그 2번의 계절이 넘는 시간 동안 이와이즈미와 오이카와의 관계는 한 번도 이렇다 할 변화를 맞이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둘 다 서로 사이의 변화를 추구하지도 않았으며 아쉬워하는 일도 없었다. 때때로 대외적으로 마주치는 것을 제외하고는 만남의 횟수조차 턱없이 적었다. 둘이 가졌던 첫 만남에서 곧 둘의 사이에 싸움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던 다른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그들의 7개월은 몹시 편안했고 안정적이었다. 나쁘지 않은 시간이었음에 틀림없다. 오히려 아마 그 7개월이 그들의 인생 중 가장 평온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서로가 제대로 엮이기 전의 시간이란 그랬다. 이와이즈미는 평생을 역사 속에서 위대한 성군(聖君)으로 남았을지 모르고 오이카와는 꾸준하게 제 몫의 1000년을 채우고 눈을 감았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들이 영원히 각자의 평온을 보냈더라면 이야기는 시작조차 되지 않았을 터이다. 이와이즈미와 오이카와가 막 2번째 계절이 끝나갈 무렵 짧은 전쟁이 있었다. 당연히 오이카와와 같은 존재가 있는 나라였다. 전쟁은 약 50일간 반복되었으며 마침내 종결될 즈음 상대 나라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오이카와는 저와 같은 존재의 이방인에게 칼을 꽂으며 짧은 묵념을 건넸다. 심장을 관통한 칼끝은 흉할 만큼 많은 양의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종종 존재하는 서열의 확립이었다.


어떠한 특출 난 무리 속에서도 서열이라는 것은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먹이사슬을 완벽하게 피해가는 종은 없다. 설사 피라미드의 가장 꼭대기에 위치하는 생물들 역시 그 안에서 또다시 피라미드를 쌓는 것이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삶의 법칙과 같았다. 그리고 오이카와는 운 좋게 매번 그 법칙에서 살아남았다. 비록 가지고 있는 힘이 공격보다는 방어에 가까웠고 그것으로 동족에게 당한 상처를 치료할 수도 없었지만 그래도 그는 번번이 그 법칙에서 승리했다. 오이카와는 영리했고 또 민첩했다. 그는 부정할 수 없는 피라미드의 피라미드. 그 꼭대기에 서 있는 존재였다. 그리고 피라미드 가장 위의 계층이 이러한 서열의 재확인을 할 때마다 죽어나가는 것은 당연하게도 그 아래 계층들이었다. 50일 정도가 소모된 전쟁이었다. 규모와 길이를 떠나 꽤 많은 병사가 피를 흘리게 된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었다.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는 굴레였다. 오이카와는 한숨을 쉬었다. 또다시 문을 두드리는 시녀의 소리가 들렸다.


복부의 오른쪽 아래쪽에 약지길이만큼의 찔린 상처가 있습니다. 위치가 위치인 지라…….”


오이카와가 시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자의 복부로 손을 가져갔다. 남자가 숨을 몰아쉴 때마다 울컥거리며 피를 내뿜던 상처는 그의 손이 닿는 순간 씻은 듯이 아물어갔다. 나름대로 죽음의 문턱까지 달려갔던 것치고는 시시한 귀환이 아닐 수 없었다. 오이카와가 손을 뗐다. 제 손바닥에 그새 엉겨 붙은 피를 닦아내던 그가 남자를 쳐다보았다. 한 순간 상처가 사라진 남자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연신 내뱉었다. 그리곤 무언가를 잘못한 사람처럼 후다닥 밖으로 뛰쳐나가는 것이다. 익숙한 풍경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벌써 20번째 반복되는 상황이었다. 매번 제가 대신 당황한 표정을 지어보이던 시녀도 이날은 덤덤했다. “다음은.” 오이카와가 짧게 물었다. 시녀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뒤이어 아직 다섯이 남아있다고 말을 이었다. 오이카와는 피곤함을 느꼈다. 며칠째 계속되는 일정인지 숫자를 세려다 포기했다.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의욕이 더욱 꺾이기 때문이었다. 문이 열렸다. 다른 인물이 새로운 상처를 가지고 나타났다. 죽음에 한껏 움츠러든 표정이었다. 상처 위로 새로운 피가 보였다. 색은 비슷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능력은 참 좋네.”

이제 알았어?”


이와이즈미와 오이카와 각자의 일정들이 대충 정리가 되고 둘이 다시 만난 것은 꼬박 이틀이 지난 후였다. 오이카와는 갑작스럽게 뒤에서 들리는 이와이즈미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가 허리를 돌리자 앉아있던 침구가 살짝 흔들렸다. ()색이 은은한 이불 끝이 바닥에 닿을 듯 말 듯 애매한 경계를 유지했다. 온통 붉은 색으로 도배한 침구를 보고 오이카와가 바꾸어 달라 했던 색이었다. 오이카와는 괜스레 쓸데없이 침구 군데군데 붙어있는 황금빛 장신구들을 만지작거렸다. 이와이즈미는 불쑥 예의도 없이 찾아온 주제에 당당한 표정으로 오이카와를 마주했다. 먼저 입을 연 쪽은 오이카와였다. 오이카와는 이틀간 거의 150명의 상처를 치료했다.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자란 능력이라지만 피곤함이 없을 리 없었다.


피곤한데 뭐야.”

들은 게 있어서. 나도 별로 오고 싶진 않았다.”


단호하게 말하는 목소리가 꽤 단단했다. 오이카와는 용건이 무엇이냐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으나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의 표정을 본 채 만 채 아무 말 없이 그에게로 다가섰다. 이와이즈미가 오이카와의 옆에 앉았다. 다시 한 번 청()색이 은은한 이불이 출렁거렸다. 오이카와는 떨떠름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와이즈미가 여전히 오이카와의 시선은 상관하지 않고 그에게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는 오이카와가 입고 있는 검은색 의복의 옆구리 부분을 움켜쥐었다. 끈으로 묶여 있던 부근이 그의 힘으로 인해 풀리며 속살을 내비췄다. 놀란 오이카와가 무어라 소리를 내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미 속살을 전부 보인 후에야 오이카와가 몸을 뒤로 뺐다. 그마저도 전부 물러나지는 못했다. 이와이즈미가 혀를 찼다. 손가락으로 의복 사이의 한 부분을 눌렀다. 오이카와가 입술을 깨물었다. 아직까지 벌어진 상처 틈이 아렸다. 익숙하지 못한 고통이었다.


네 시녀가 다친 것 같다고 알려줘서 말이야.”

용케도 눈치 챘네.”

스스로 치료할 수 있지 않나?”

동족한테 당한 건 나도 어쩔 수 없어.”


앞서 살짝 언급했듯 오이카와의 능력은 출중하지만 동족의 손을 탄 부분이라면 얘기가 조금 달랐다. 치료를 아주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속도가 더뎠다. 이번처럼 생각보다 상처의 깊이가 있다면 더더욱 속도가 느렸다. 오이카와는 제 약점을 들킨 사람처럼 재빠른 손놀림으로 옷을 여미며 말했다. 다른 이에게 제 허점을 보이는 건 언제나 꺼려지는 일이었다. 때문에 생각보다 더 날카로운 목소리가 나갔다. “겨우 이걸 확인하려고 왕이 직접 행차한 거야?” 오이카와는 비아냥이 잔뜩 묻은 목소리를 이었다. 그럼에도 이와이즈미는 표정 변화 하나 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역할이라는 게 있잖아.” 고민 없는 그의 목소리에 사적인 감정은 전혀 없었다. 오이카와의 위치를 확실시 해주는 말투였다. 새삼 이곳에서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는 이와이즈미밖에 존재하지 않음이 확실해졌다. 그는 이곳에서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유일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아마 그의 시녀는 그가 다쳤다는 사실을 꽤 오래전에 알았음에도 두려워 말을 걸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그녀의 두려움이야 늘 마주하는 것인데도 그날따라 오이카와는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이틀의 시간동안 150이 넘는 인간들을 치료했음에도 그녀에게 변화를 줄 수 없었다는 것이 벽을 알려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제가 태어날 때부터 저와 같은 존재의 피에 닿는 이들은 병 혹은 악재가 생긴다는 소리가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으나 앞서 말했듯 그러한 소문들에 하나하나 해명과 변명을 해보이자면 끝이 없었다. 과연 변명을 한다고 들어주기나 할까? 오이카와는 입을 여는 순간 오히려 더 시끄러워질 미래를 알았기에 입을 다물었다. 쓸데없는 소문은 나날이 지날수록, 화두에 올릴수록 늘어날 뿐이다. 그러니 늘 엉터리 소문 속에서 제자리걸음이다. 오이카와는 어쩌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아무리 많은 이들을 죽음에서 건져 올려도 두려운 돌연변이로 남을 것이다. 동족들 사이에서도 오이카와는 멀리 살고 있는 몇몇을 제외하곤 평화로운 돌연변이로 취급되고 있으니 제대로 속한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기이한 일이었다. 존재하고 있으나 그 어디에도 분류될 수 없는 자의 외로움이란 그처럼 설명하기 힘들었다. 이와이즈미가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붕대를 올려 보낼 테니 두르고 다녀. 조금만 옅은 색의 의복을 입었으면 누구나 알 수 있었을 거다. 다쳤다고 시위하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알아도 말하지 못하잖아. 괜찮아.”


아차. 쓸데없이 감성적인 생각을 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아이 같은 말투가 튀어나가고 말았다. 오이카와는 말하고 나서 곧장 후회했다. 창피함이 밀려와 자리를 피하고 싶었으나 자신의 방이었기에 제가 나가는 것도 우스웠다. 무엇보다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의 행동을 쉽게 예상할 수 없었다. 혹 제가 나갔다 들어왔음에도 그가 방을 지키고 있다면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오이카와는 도저히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그랬기에 그는 입을 다무는 것을 선택했다. 당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침묵이 이어졌다. 슬쩍 돌려본 눈동자에서 이와이즈미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차라리 나가주었으면 했으나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오이카와가 그 침묵에 민망한 헛기침을 할 즈음 마침내 이와이즈미가 입을 열었다. “피가 닿으면 악재가 온다고 했던가.” 오이카와에게 하는 말이라기보다는 중얼거림에 가까웠다. 오이카와가 대꾸하기엔 애매한 크기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오이카와를 쳐다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문득 처음 만남에서 눈이 마주쳤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와 같은 듯 전혀 다른 느낌의 마주침이었다. 더더욱 난감한 침묵이 이어졌고 이번엔 이와이즈미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마주치고 있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손을 움직였다. 그는 오이카와가 애써 여몄던 의복을 다시금 풀어헤쳤다. 검은색 의복 위 묶여 있던 녹색 끈이 풀리고 이제 막 끝이 겨우겨우 아물어가는 상처 하나가 재등장했다. 오이카와는 그 동작에 어정쩡한 제 손의 위치를 어찌할 줄 몰라 했다. 끝만 아문 제 상처를 빤히 바라보는 이와이즈미의 생각을 종잡을 수 없었다. 단순한 구경인 것일까. 그 정도까지 생각이 도달한 오이카와가 불쾌한 목소리를 내려고 할 때 돌연 그보다 이와이즈미의 행동이 앞섰다.


잠깐. 뭐하는!”


이와이즈미가 거침없이 오이카와의 상처를 벌렸다. 막 이어 붙어지던 살점이 다시 뜯어지는 소리가 작게 울리고 곧 피가 새어나왔다. 비교적 하얀 피부를 타고 흐르는 핏방울은 얇고 기다란 길을 만들었다. 이와이즈미가 항시 들고 다니는 단도를 빼들었다. 코끼리의 상아로 칼집을 만들고 나라에서 제일가는 대장장이가 10년간 공을 들인 날카로움을 가진 칼날이었다. 그가 꼭 어제 만든 칼처럼 끝이 반짝거리는 단도를 고민 없이 휘둘렀다. 기실 휘두름보다는 스쳤다는 말이 맞을 정도로 짧은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피는 흘렀다. 꾸준히 순환 해온 것을 증명하듯 건강한 피가 과즙처럼 터졌다. 이와이즈미가 주먹을 쥐었다 폈다. 안 그래도 흐르던 핏방울은 그 움직임에 더더욱 많은 양의 피를 쏟았다. 그가 주먹을 쥐었다 펴는 순간 그의 손금을 따라 벌건 길이 몇 갈래로 나뉘었다. 오이카와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도무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는 듯해 보이는 얼빠진 표정이었다. 이와이즈미는 피가 묻지 않은 깔끔한 왼손으로 단도를 도로 칼집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는 오이카와 쪽으로 제 몸통을 기울였다. 둘이 가진 틈의 사이가 채 두 뼘이 되지 않았을 때 그가 더 이상 몸을 움직이지 않고 오른손만을 뻗었다. 손길이 느렸다. 아마 오이카와가 피하려고 마음을 먹었다면 곧바로 피할 수 있을 만큼의 속도였다. 상처 틈으로 흐르는 핏방울은 다가오는 와중에 허공에서 몇 번이나 흩뿌려졌다. ()색이 흐르고는 있다지만 분명 흰색이 더욱 짙던 이불 위로 선명한 붉음이 새겨졌다. 오이카와가 저도 모르게 침구에 달려있던 황금색 장신구를 손으로 쥐었다. 손에 힘이 들어갔다.


…….” 오이카와가 짧게 앓는 소리를 냈다. 앓음보다는 탄식에 가까운 소리였으나 무엇이든 정의는 중요치 않았다. 중요했던 것은 무엇과 무엇이 닿았는지 이리라. 오이카와가 잡고 있던 장신구가 그 순간 끊어졌다. 오이카와의 손에 과도한 힘이 들어간 것이 원인이었다. 그때 오이카와가 평소보다 커진 동공으로 생경한 장면을 두 눈에 담았다. 짙은 갈색의 눈동자 안으로 자극적인 풍경이 들어찼다. 담담한 표정을 지은 것은 이와이즈미 뿐이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이와이즈미조차 제가 행한 행동에서 예상하지 못한 미묘한 느낌을 받고 있었으나 애써 담담한 척을 하고 있었다. 오이카와의 상처 위로 이와이즈미의 상처가 맞물렸다. 맞닿은 부위가 뜨거웠다. 이 정도 맞물림으로는 어림도 없겠지만, 오이카와는 문득 피가 섞이고 있다는 기분을 느꼈다. 삶에서 다시 오지 않을 수혈이었다. 울렁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몸속으로 낯선 종자가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누군가와 무언가를 함께 해야 한다는 건 쉬우면서도 어렵지.”

…….”

동행(同行)이라는 건 필수불가결적으로 어느 정도의 신뢰를 치러야 하니까.”

…….”

값이 된 건가?”


이와이즈미가 그 말을 중얼거리며 다시금 맞닿은 손바닥 부근을 아래로 더욱 눌렀다. 체중이 실리며 상처의 고통도 커졌다. 그러나 둘 중 누구 한 사람도 얼굴을 찌푸리거나 하는 표정을 보이지는 않았다. 오이카와는 제가 끊어버린 황금색 장신구를 바라보았다. 그것과 함께 청()색 이불을 쥐어 잡았다. 손톱 밑이 살짝 들리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힘을 준 손길이었다. 이와이즈미와 오이카와의 눈이 마주쳤다. 검은색과 짙은 갈색의 만남은 맞닿은 손바닥과 옆구리만큼이나 투박했다. 섬세함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눈이 마주친 채 몇 초의 시간이 흘렀을 무렵 이와이즈미가 손바닥을 떼었다. 오이카와의 옆구리에 짧은 해방감과 시원함이 들었다. 이와이즈미가 피로 범벅이 된 손바닥을 쥐었다. 이제 완벽하게 그의 피만이 그의 손바닥 안에 있다고 하기엔 애매했다.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의 구성 요소가 전부 그의 몸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단정 짓기 불가능했다. 오이카와는 제 등 뒤로 소름이 돋았음을 깨달았다. 척추를 타고 시작해 머리카락이 덮고 있는 바로 밑 목 부근 까지 전부. 오소소하게 돋아난 살결이 있었다. 이와이즈미 또한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는 누구의 것인지 모를 똑같은 색의 피를 보며 말이 없었다. 그건 오이카와도 마찬가지였다. 누구도 쉽사리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나 그 침묵의 성질이 아까처럼 단순한 어색함으로 발단된 것은 결단코 아니었다.


이와이즈미가 오이카와의 방을 나선 것은 그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그는 진득했던 피가 응고 되어 덩어리 질 때까지 그곳에 있었으며 비단 그것을 한 번에 치료해줄 수 있는 오이카와가 바로 눈앞에 있었음에도 상처를 단 채 그대로 방을 나섰다. 그것은 어찌 본다면 그들에게 있어 나름의 증표와 같았다. 오이카와는 아직도 얼얼함을 간직한 옆구리를 쳐다보았다. 덜 아문 상처 위로 기포가 올랐다. 오이카와는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다 문득 이상함에 손을 뻗었다. 그 뒤 그의 손바닥 위에 떨어진 것은……. 그건 오이카와의 새로운 비밀이 되어 굳건히 자리를 지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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